동해왕 이사부 "실직주의 두 주체인 동해시와 삼척시 연대(결합)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어"
동해왕 이사부 "실직주의 두 주체인 동해시와 삼척시 연대(결합)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어"
  • 김지성 기자
  • 승인 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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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의 대한 정확한 실체 규명이나 연구도 없이 지역 이기적인 폐쇄적 선양

역사왜곡으로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 침탈 명분 줄수있어

북평에서 발굴된 (금) 동관에 대한 정확한 연대측정 필요

나무토막 깎아 출정한 것이 아닌 나무사자 가면을 쓴 것

동해시(옛 삼척군) 북평 뜰 최초의 승전지

 동해왕 이사부 관련 동해시 북평공단(옛삼척군)이 실직주였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이사부 장군의 역사적 사실이 재 조명되며 동해.삼척시가 협력하여 공동선양 해야한다는 필요성이 수면위로 오르고있다.

이사부학자인 정토 작가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인텨뷰는 지난 11. 6일 진행)

 

1. 질의1 : 이사부 선양을 동해. 삼척이 공조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토작가 ☛

첫째, 역사적으로 모든 문헌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실직주의 영역에서 북평산업단지가 있는 실직 들녘은 수없이 고구려와 신라, 말갈 잔존세력의 분쟁이 일어났던 지역으로 이곳과 경계지역인 용정산성을 조명하지 않은 실직주의 이사부는 제대로 된 흔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당시 실직주였던 동해시와 삼척시는 공동연구와 선양으로 현재의 출항지 역사왜곡 논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둘째, 실직주의 후방지역인 현 삼척시와 달리 고구려와의 최전방으로 AD550년 이사부가 실직주의 군주로 부임한 이래 크고 작은 전투로 고구려와의 대척점에 있었던 상황에서 AD511년 고구려의 용정산성을 함락시켜 하슬라로 진입한 시점까지 대부분을 용정산성을 사이에 둔 상황에서 지금까지 10년 동안 삼척시 내에선 조명하였으나, 오히려 조명해야 될 실직주의 동해시는 일체 조명조차 되지 않아 동해시를 중심으로 한 이사부의 선양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2008년 강원도가 동해안 6개 시.군을 대상으로 이사부를 동해의 대표적인 인물로 선양하려 1,984억의 사업 용역을 발표한 이후 이사부의 대한 정확한 실체 규명이나 연구도 없이 지역 이기적인 폐쇄적 선양을 한 결과 10년이 지난 이제야 이사부에 대한 실체와 전적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2020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이사부의 족적이 있는 곳에서 경쟁적으로 이사부 선양을 할 경우 예산과 인구에서 열세인 강원도의 이사부 선양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에 최소한 실직주의 동해시와 삼척시는 상호 협력하여 이사부를 국가적인 인물로 선양할 수 있는 동력을 가져야 합니다.

 

2. 질의2 : 이사부 선양에서 삼척이 말하는 오류는 무엇인가?

정토작가 ☛

첫째, ‘출항지 역사왜곡’

결론으로 요약하면 실직군주 이사부는 한 번의 출정을 하였으나 여러 이유로 실패한 것으로 모든 문헌에서 분석한 결과 확인된 것으로 현재 오분항에 설치한 이사부 우산국 복속 기념비와 같은 역사왜곡 소지가 있는 상징 기념비는 철거 또는 수정해야 합니다.

이는 이미 국가에서 국가연표로 제정할 때 모든 문헌과 기록을 토대로 ‘하슬라(강릉)군주 이사부가 AD512년 우산국을 복속’했다는 연표를 확정하여 국방부 전쟁기념관 신라관 첫 머리와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 등과 해외 주재 기관에 국가의 기록으로 공표한 것으로 이는 일본으로 하여금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기록으로 확인되어 삼척의 근거 없는 주장인 출항지 우산국 복속의 기념비 등의 지자체만의 공표는 자칫 역사왜곡에서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 침탈의 명분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삼척시는 이를 재고해야 합니다.

둘째, ‘나무사자에 대한 오류’

문헌의 나무사자는 병법의 이해가 깊고 풍월도의 지존으로 도교와 같은 신선사상을 체득한 이사부의 경우 실직주에서의 실패를 교훈삼아 하슬라군주로 출정할 때에는 계략으로 우산국의 우해왕을 굴복시키려 했기 때문에 그 계책인 나무사자는 단순히 나무토막을 깎아서 흔들리는 풍랑 속에 20~30명의 수군이 타는 군선에 싣고 출정한 것이 아니라 북청사자처럼 나무사자 가면을 쓴 것으로 역사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사부장군은 우산국 복속 시 계책의 근거로 연구한 결과 중국 고대병법의 스승인 태공망 여상(강태공)의 ‘육도’를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중 11번의 ‘오음소리’는 나무로 만든 가면을 쓰고 소리로 적을 기만함으로써 두려움에 복속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중국 <산해경>의 神獸와 이를 정리한 조선 이익의 <성호사설> 萬物門 ‘용생구사’에 기록되고 신라 최치원의 <향약잡영>에 표현된 龍의 8번째 아들인 산예[狻猊](금예, 신라 박[狛])가 사자처럼 생긴 용으로 신라 후기 가면을 쓰고 춤을 춘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동해안에선 이로 인해 강릉의 사자가면극인 ‘장자마리’와 양양의 동해신묘를 지키는 ‘걱’의 형태로 전승되었으나 조선총독부에 의해 철저히 말살된 것으로 이는 龍의 4번째 아들인 ‘패안’처럼 호랑이와 같이 생긴 개의 모습을 한 용이 북청사자로 전승되어 온 것처럼 조선총독부는 이를 철저히 말살하였으나 최근 일본 고대음악지인 <信西古樂圖>에 두루마리로 ‘신라박입호무’ 등의 신라 춤으로 나타나 있으며 일본은 한반도 남북 민족정기의 상징인 이 신라 박과 북청사자를 말살한 후 고마이누와 사자상의 형태로 일본 내 7만 여 곳의 신사와 일제 식민지 시기 한반도 내 신사 1,062 개 중 주요 신사에 고마이누(고구려개)와 사자상(신라개)을 자신들의 천황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변형시킨 것으로 확인되어 이는 500년 후 조선 이순신의 귀선(거북선)이 용의 첫째 아들인 ‘비희’처럼 거북처럼 생긴 용의 모습으로 오늘 날 전해진 것과 일백상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외 강릉에서는 심일수의 <둔오유고>의 기록으로 1909년 단오제 개막 시 이사부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하러 가는 과정을 그린 사자 가면극을 이익의 <성호사설>과 아키바 다카시의 <조선민속지>, 촌산지순의 <조선의 향토오락>을 근거로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하고 돌아오자 강릉백성들이 사자가면을 쓰고 춤을 추고 놀았다는 것이 강릉에서 양양, 고성에서 사자가면 놀이가 생긴 민속놀이였으나 조선총독부는 이를 모두 말살한 것이 역사의 기록으로 이는 남북의 민족정기를 말살시켜 내선일체의 ‘日鮮同調論’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출항지 역사왜곡은 매국행위로 반드시 중단되어야 합니다.

셋째, ‘폐쇄적인 이사부 선양’

10년 동안 필자는 삼척시에 수차에 걸쳐 기자회견과 성명서, 방문 면담 등을 통해 실직주의 삼척시와 하슬라주의 강릉시는 시 차원이든 민간 차원이든 상호 협력하여 공동 연구할 것을 촉구하였으나 모두 거부하여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이사부가 일반 축제처럼 예산만 들여 선양하는 것이 아닌 민간 자율과 지자체 협력의 거시적 틀 속에서 공동 연구해야 이어지는 고대역사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지자체의자체 폐쇄적인 선양으로 전국에서 확인한 이사부의 역사인식과는 큰 괴리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는 남해의 이순신 장군 선양처럼 자칫 역사왜곡의 소지가 있는 지자체일 경우 선양의 동력이 상실될 수 있기에 삼척시는 2020년부터라도 거시적으로 동해시와의 연대 협력과 하슬라의 강릉, 병부령의 전국 지자체 선양지역과의 연대로 찬란했던 이사부의 위대한 업적을 선양하기를 기대합니다.

 

3. 질의3 : 이사부 관련 유적(유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정토작가 ☛

모 매체가 이사부를 은폐했던 사례로 삼척 외 다른지역에서 매장문화재가 발굴되면 강릉은 수심이 얇아 출항하지 못하고 동해는 뜬금없이 대가야 유물이라는 등 황당한 애기를 들어서 북평의 매장문화재는 연대측정부터 해야 합니다. 특히 금동관은 직제에 따라 왕이 군주에게 내리는 상징물로 강릉 초당동의 금동관은 경포대신라토성에서 발굴된 금가락지 등과 작년 초당에서 발굴된 철제갑옷과 모두 하슬라시기로 연대일치한 것처럼 북평에서 발굴된 부장품은 정확한 탄소연대측정부터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동해시 북평산업단지에서 발굴된 (금) 동관과 강릉시 초당동에서 발굴된 근(동)관. 이 부장품이 발굴된 곳의 특징은 왕이 군주에게 전권을 주는 상징으로 강릉의 금(동)관은 하슬라 시기로 경포 신라 토성에서 발굴된 부장품과 인근에서 발굴된 철갑옷이 연대측정 결과 하슬라 시기로 일치한 것으로 보아 동해시 북평에서 발굴된(금) 동관 또한 연대 측정할 경우 신라 22대 지증왕(재위 500~513년)이기 실질 군주로 수여 한 부장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발굴된 북평산업단지의 위치 또한 실직주의 넓은 평야 지대로 당시 AD505년부터 511년까지 대부분을 고구려와 신라와의 전쟁을 벌였던 지역으로 고구려의 산성이었을 용정산성 또한 고구려 제20대 장수왕이 쌓았던 것으로 보여 동해시는 용정산성에 대한 성터 발굴과 함께 북평에서 발굴된 (금) 동관에 대한 정확한 연대측정이 요구됩니다.


조선총독부가 말살하여 조선반도에서 이사부의 흔적을 없앤 조선사 37권과 동해안과 전국에 산재한 이사부의 족적. 그중 태종 이사부 장군의 전쟁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실직군주 AD505년부터 AD511년까지 7년 동안을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보낸 전쟁터가 바로 당시 실직주였던 동해시(옛 삼척군)의 북평산업단지가 있던 북평 뜰 이였습니다.


찬란했던 동해안의 고대역사가 유일하게 태종 이사부 장군이 육지전에서 6년을 동고동락했던 장소가 바로 용정 산성과 북 평 뜰이었으며 그 흔적은 현재까지 구전으로, 설화로, 매장문화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4. 질의4 : 전국 이사부선양에서 타지방과 강원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정토작가 ☛

현재까지 연구한 결과 확인된 이사부의 전적지는 勝戰地域과 生家만 해도 전국에 산재하고 있습니다. <태종 이사부의 전적> 참조.

이순신장군의 선양만 보더라도 5곳에서 재단을 만들어 국책사업으로 진행하는 이순신선양처럼 강원도는 최소한 실직주 지역인 동해. 삼척시가 협력하여 공동선양을 하지 않으면 예산과 규모, 역사논란 등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제 강원도는 최대 장점인 독도로 상징되는 우산국 복속이란 역사적 기록을 선양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실직주의 두 주체인 동해시와 삼척시가 연대 또는 결합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날 인터뷰를 진행한 정토 작가는 1960년생으로 2001년 현대시문학 신인상, 2003-1년 강원문화재단 문학심의위원, 2001-5년 강원 민예총 문학 위원장,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 교육 실천사례"평화상, 2014년 국립 강릉원주대학교 특강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 동해이사부선양연구소장/도서출판 이사부 대표이다. 부도, 유배지 사람들, 이사부금동관, 강릉 단오 12지신, 동해와 이사부, 홍길동 소송사례연구, 조선총독부가 말살한 한반도 저승사자(이사부) 등 을 출판했으며 이사부 관련 어문, 논문, 편집, 영상 관련 저작권(24건)을 다수 등록했다.

정토 작가는 인터뷰에서 앞서 실직주인 삼척시가 하나의 역사를 같이한 동해시와 함께 연대(결합)하여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실직주로서의 당당한 역사를 후세에게 남겨주어야한다고  전했다. 또한, 언제라도 삼척시 이사부 관련 학자들과 만남과 소통의 자리가 주어진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삼척시의회 김명숙 의원은 제214회 삼척시의회 제2차 정례회 5분발언을 통해 동해왕 이사부의 사상을 제대로 해석하고 이사부의 진정한 가치가 재조명되기를 촉구했다.

김 의원은 우리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동해왕 이사부>가 삼척지역, 장수 정도로 축소되어 있다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삼척은 청정자연의 바탕과 역사적 인물 및 향토 사료에 거시적으로 접근하여 관광산업의 방향성을 잡아야한다고 말했다.

이사부가 동해 우산국을 정벌할 때 앞세웠던 목우사자는 나무토막이 아닌 신라 최치원의 「계원필경」과「향악잡영」에는 산예가 가면을 쓰고 춤을 추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으며 목우사자의 모습을 한 용은 이순신장군 한산대첩 거북선의 근거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지금부터라도 동해 왕 이사부의 사상을 제대로 해석하고, 진정한 가치가 조명되어 관광산업의 중요한 자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첫째, 동해왕 이사부에 대한 <상표 등록>을 하고“이사부의 날”을 지정하여 고유성을 갖추도록 하고,둘째, 동해 왕 이사부의 화랑정신을 일깨우도록관내 중ㆍ고등학교 내에 부설 <화랑학교>를 세워풍월도의 사상을 배우게 하고,셋째, <이사부 스카우트단>을 창단하여 관내 초·중·고·대학,아울러 해군해병, 수협 및 어업인과 청년 등바다와 연관된 모든 기관단체에도 권장하여봉사활동 및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고,넷째, 이사부 사자탈춤을 다시 재계발해서목우사자의 전설을 넘어살아있는 사자탈춤이 전통계승되어공연되도록 하고,다섯째, 동해 왕 김이사부에 대한 포럼을 지속적으로 열고,사료를 수집정리하여 이사부 역사문화 창조사업의<이사부역사관>에 활용되도록 제언하며  강릉은 물론, 동해에서는 지난달에도 포럼을 열고 자료집을 내며 연구하고 있는데 삼척시는 역사적 고증과 철학적 고민 없이 10년이 넘도록 연구는 하지 않으며이사부 선양사업에 올인 하여 죽어있는 저승사자 사업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512년 실직주(삼척)의 바다를 호령하며,우산국을 정벌하고 점령했던, 실직주의 군주!태종(苔宗) 동해왕 김이사부가 살아 나오도록<이사부 선양사업회>도 명심하고 동해왕 이사부 사업을 주도하여실직 삼척의 역사가 살아 숨 쉬도록 정신을 일깨워 달라 촉구했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삼척시가 소장하고 있는 이사부 자료를 요청했으며 회신을 기다리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삼척시와 동해시가 하나의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재확인되고있다.

 

 

 //정토작가가 제공한 <태종 이사부의 전적>

[0세]AD484년 태어난 생가(신라 왕실)의 경북 경주를 시작으로

* 소지왕의 마복자(국가인재 대부제도)로 아진공과 보옥공주의 아들로 백결선생을 스승으로 풍월도 수련.

[21세]AD505년 실직군주 이사부의 강원 동해. 삼척

* 동해(옛 삼척군) 용정산성, AD511년 이사부 첫 승전지

[28세]AD512년 하슬라군주 이사부의 강원 강릉

* 국가연표-하슬라(강릉)군주 이사부, AD512년 우산국 복속.

[40세]AD524년 6부의 수장으로 울진반란 진압

* 국보 제242호 울진봉평리신라비

[45세]AD529년 상신 이질부례지간기(이사부)의 1차 규슈 정벌 출항지 부산 태종대

* 태종 이사부의 주필과 3번에 걸친 정벌로 태종대 유래

[48세]AD532년 삼로장군 이사부의 금관가야 복속 경남 김해

* 금관가야 김구형 왕의 아들인 김무력, 김서현장군의 이사부 무장 활동과 며느리 증손녀 영모의 남편 김유신장군과의 인연.

[54세]AD538년 아시량의 도독 이사부의 혼슈 정벌 출항지 부산 태종대

* 신라 <國史>로 보이는 남당유고의 기록으로 태종 이사부가 부산 태종대에서 신라 군사 반을 이끌고 혼슈의 천황가가 있는 가와치 정벌.

[57세]AD541년 신라 제24대 진흥왕 즉위 후 이사부의 부인인 지소태후 10년 섭정, 이사부 내외군권 총괄 병부령 취임.

[61세]AD545년 병부령 이사부, 진흥왕에 가감 없는 신라 역사를 기록할 것을 건의하여 거칠부에 명하여 신라<國史> 편찬.

* 일본 ‘궁내성’의 사서로 있던 남당 박창화 선생의 필사본 <남당유고>의 ‘고구리창세기’와 ‘신라 법흥왕 편’을 분석한 결과 일본이 빼돌린 신라 <國史>일 가능성이 높음.

[66세]AD550년 병부령 이사부의 고구려. 백제 격퇴 충북 단양

* 국보 제198호 단양신라적성비에 유일하게 이사부의 이름 기록.

[71세]AD555년 병부령 이사부의 최측근 김무력. 거칠부에 의한 고구려 격퇴 서울. 북한산

* 국보 제3호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

[72세]AD556년 병부령 이사부의 사찬 성종에 의한 고구려 격퇴 강원 양양. 속초. 남북 고성

* 양양 오봉산 고성의 장군성 유래와 고성 문암리의 미륵동 설화

[77세]AD561년 병부령 이사부의 대가야 복속 경남 창녕

* 국보 제33호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

[78세]AD562년 국상 이사부의 규슈정벌 출항지 부산 태종대

* 화랑 사다함의 기병 5천을 선봉에 선 규슈 센단마치의 전단성 돌파하여 임나 10국 연합세력 항복

[84세]AD568년 국상 이사부의 거칠부.성종 군주에 의한 함경도 함흥

* 북한 국보 제110.111호 황초령.마운령신라진흥왕순수비

[88세]AD572년 신라 진흥왕 주관으로 <팔관회>를 1주일 간 개최하여 전쟁 중 사망한 장졸 추모

* 진흥왕의 계부이자 신라 국상인 이사부장군은 이 전, 병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유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