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찬 의원.. 이른 봄, 늦은 겨울 "동해시장 출마" 예고
최석찬 의원.. 이른 봄, 늦은 겨울 "동해시장 출마" 예고
  • 김지성 기자
  • 승인 2022-0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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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의회 의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석찬 의원(사진)이 자전에세이 “이른 봄, 늦은 겨울을 출판한다. 출판기념회는 1월 22일 오후 1시 동해시 평생학습관에서 개최한다.

”이른 봄, 늦은 겨울“은부에서는 어린시절 이야기를 담았으며, 2부와 3부에서는 34년 민주당 당원을 하며 겪었던 삶의 이야기와 소회를 담았다. 최석찬 의원은 프롤로그 ”돌아보아야 더 단단히 딛고 설수 있다“에서 출판 이유로 지난 34년의 정당생활을 돌아보며,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기 위해 자전에세이를 출판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최석찬 의원은 책에서도 밝혔듯이 정체되어있는 동해시에 새로운 혁신을 위해, 오는 지방선거에서 동해시장 출마를 예고했다.

 

최석찬자전에세이 ” 이른 봄, 늦은 겨울“

│차례│

추천사 정세균(전, 국무총리 / 국회의원 이광재)

프롤로그 │ 돌아보아야 더 단단히 딛고 설 수 있다

야생초 피기까지 아직,

아직, 이른 봄

삼화, 기차길 따라

북평장 미역타래

송정비행장

땅콩카라멜

송정해수욕장 비키니

성웅이순신

명주군 묵호읍

만경대

고백의 미학

농약중독

숙명적인 선택

조국근대화의 기수, 정밀기계공학과

영등포마치코바

장발머리 기타리스트

하사와 병장

여전히, 늦은 겨울

5.18과 박종철 한국통신과 민주산악회

6. 10 국민대회 150만 명의 사람들 단일화는 없었다

1987. 12. 16 경순이 형과 도원결의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노무현의 길을 따라

동해시 야당인의 삶

1997. 12. 18

2002. 12. 19

민주당 34년, 사무국장 15년

첫 출마를 결심하며

이른 봄 지나 여름이 오기까지

촛불의 함성

촛불 정부의 탄생 그리고 동해시의장

30년째 얼어버린 백두대간 동편

나의 20대와 MZ세대

철도와 바다로 잇는 실크로드의 꿈

개마고원을 향해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지는 노을처럼 살아야겠다

정치인의 길에서 10분 자유발언 모음

에필로그 │ 아직, 이른 봄 여전히, 늦은겨울

│프롤로그│

돌아보아야 더 단단히 딛고 설 수 있다

출판사에 근무했던 후배를 만났다. ‘형님 정치하시는 분인데 책 한권 써보시죠’라며 출판을 종용했다. ‘에이 무슨 글을 써’라며 완강히 거절했다. 일기 쓰는 것도 숙제의 일부였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나를 온전히 글로 옮기는 일은 가당키나 한 일이 아니었다. 아주 가끔은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2016년 초겨울 그날까지 바쁨을 핑계 삼아 생각 한편에 미루어 두고 있었다.

2016년 초겨울 그날은 유난히 추웠다. 아이들 손잡고 나온 엄마 아빠, 하교길에 교복차림에 온 학생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 모두 한 마음으로 모여 들었다. 50년 넘게 동해에 살았지만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 손에 촛불 곱게 들고, 또 다른 한손에 이야기 대본을 들고 모여 들었다. 시민 발언대에 선 분들은 모두 같은 요구를 하고 있었다. “이게 나라냐! 나라다운 나라를 원한다”고 외쳤다. 세상 조금 사신 분들은 종이에 꾹꾹 눌러 써서 한 풀이를 했고, 아이들은 핸드폰을 보며 희망을 만들자고 이야기 했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나열하며 친일파 청산을 외쳤다. 놀라운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 어린 친구의 말 중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호소는 내 가슴을 찌르며 들어왔다. 스물 청춘이었던 나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던 민족, 역사라는 단어가 차갑게 식어 있던 내 심장을 깨웠다. 그해 겨울 나는 두 번째 스물 청춘으로 돌아가 뜨겁게 보낼 수 있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신채호 선생의 말이든, 윈스턴 처칠의 말이든지 중요하지 않다. 이 말은 이미 굴곡 많은 근현대사를 통찰하는 가장 중요한 격언이 되었다는 것이다. 냉철한 시각으로 과거를 통해 오늘을 분석하고 내일로 가야한다. 민족의 문제는 두 말 할 것도 없고, 개인의 삶에서도 중요하다. 대선이 끝나고 2018년 선거를 준비하며 나를 돌아보기로 결심했다. 어디에서 시작해야할지 막막해 처음 나에게 화두를 던졌던 후배를 만났다.

많은 이들은 대필 작가에게 구술하는 방법을 애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무엇을 구술 할지에 대해서도 정리된 것이 없어 처음부터 하나하나 되짚어 가기로 했다. 내가 태어난 그해부터 세상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책장 구석에 낡은 앨범을 꺼내 옛 사진들을 시기별로 정리해보았다. 잊었던 친구의 이름과 함께 놀던 그날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아주 가끔은 어릴 적 그 친구들을 불러내 소주잔 기울이며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것이 기억을 켜켜이 쌓아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그 날 그 시간 그 곳에 가 있었다. 그렇게 나를 정리하는 소중한 시간을 몇 년에 걸쳐 가졌다. 하지만 노트북 자판을 앞에 두고 다시 긴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써야하는가?’ ‘어떻게 써야 하는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 왔다.

다시 후배를 만났다. 몇 권의 책을 추천해 주었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자신을 정리했는지 볼 수 있었다. 나도 나의 어제를 돌아보며 내 인생의 변곡점은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그 변곡점을 중심으로 세 꼭지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첫 번째 꼭지는 학창 시절과 청년 시절로 했다. 두 번째는 정치적 생명이 눈을 뜬 87년 이후로 잡았다. 세 번째는 지금의 나를 온전히 글로 옮기기로 했다. 첫 문장을 쓰려고 하면서 무슨 의미를 담아야하는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기장도 시간 지나 다시 보면 부끄러운 법인데, 내가 쓴 글을 다른 이들이 본다고 생각하니 온갖 생각들로 머릿속이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을 방치 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술자리에서 후배를 만났다. 내가 쓴 글에 관심을 보였다. 난 차마 한 줄도 쓰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러지 말고 학창시절 이야기를 기억나는 단어로 정리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담담하게 써보라고 권했다. 욕심을 비우기로 했다. 다른 누구를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나를 위해 먼저 쓰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는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만에 나에게서 종이로 옮겨 가게 되었다.

송정비행장, 땅콩카라멜, 만경대.. 에피소드가 하나씩 쌓일 때 마다 나에게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존경하는 유시민작가와 같은 작가가 되고 있다는 뿌듯함에 혼자 피식피식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렇게 완성된 초고를 후배에게 넘기게 되었다. 오타 투성이에 문법도 맞지 않는 투박한 내 글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입으로 내어 놓는 말은 몇 번의 생각 되새김질로 다듬어 질 수 있지만, 글로 전하는 울림은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정말 위대한 사람들이다.

“아직, 이른 봄”에서는 나의 어린 시절이야기를 담았다. “여전히, 늦은 겨울”에서는 경상도보다 더 엄혹하다는 강원도에서 민주당 한 길을 걸어온 인생역정을 담았다. 그리고 “이른 봄 지나 여름이 오기까지”에서는 이런 저런 나의 생각을 담고 싶었다. 이 글을 쓰며 나는 더 단단하게 현실을 딛고 설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조금 더 용기 내어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한다.

 

│에필로그│

아직, 이른 봄

여전히, 늦은 겨울

내가 사는 동해에는 봄이 없다. 4월에도 눈이 내린다. 바다에서 샛바람이 불어오면 서둘러 피던 매화꽃이 얼어버린다. 그리고 그 바람은 백두대간을 넘어 봄 가뭄을 만들어 낸다. 봄은 왔지만 여전히 겨울 끝자락이 함께 있다.

“이른 봄, 늦은 겨울” 제목을 결정했다. 동해시의 봄 날씨와 정치 지형과 딱 어울리는 제목이다. 지난 4년간 나를 돌아보며 참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마음에서 손끝으로 그리고 자판으로 글이 옮겨 질 때 마다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었다.

2년째 코로나19가 지구촌을 지배하고 있다. 일상이 사라지고 새로운 삶의 패턴이 만들어지고 있다.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질것이라고 예상한다.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시기이다. 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 일방적 통치와 행정 행위가 아니라 공감과 소통이 있는 정치가 선제적 대응을 이끌어 가야 한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지방자치가 시작 된지 30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지방자치는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는 아직도 지방자치단체라고 부른다. 모임도 아니고 임의 단체도 아닌데 우리는 지방자치단체라는 이름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지방정치도 함께 실종되어 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지방정부라고 불러야 한다. 그리고 지역 정치도 건강하게 살아나야 한다. 시민의 삶을 책임지는 지방정치가 시민과 함께 지방정부를 바로 세워야 한다.

1995년 민선시장의 시대가 출발했다. 4명의 시장이 동해시민의 삶을 책임지는 역할을 담당했다. 김인기 시장 2선(1995. 7 ~2000. 9), 김진동 시장 1선(2002. 7 ~ 2006. 6), 김학기 시장 2선(2006. 7 ~ 2013. 8), 심규언 시장 2선(2014. 7 ~ 현재)을 역임했다.

4명의 시장을 경험한 시민들의 평가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동해시의 변화를 책임질 시장의 역할에 대한 생각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행정가 출신, 사업가 출신, 정치인 출신에 대한 호불호도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변화를 이끌 시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방 정부의 역할은 점점 중요해 지고 있다. 자치단체간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많은 동해 시민은 삼척시와 강릉시에 끼여 있는 동해시의 멈춤 현상에 걱정을 많이 한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시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조금 더 역동적인 동해시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2022년 3월 9일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다. 국민들에게 어떤 대통령을 원하는가에 조사는 하나의 지표를 향하고 있다. 대전환의 시대에 맞는 경제적 식견과 기후변화, 디지털혁신, 에너지 전환 등을 이끌고 갈 대통령을 원하고 있다. 국민들은 대한민국 대전환을 새로운 대통령에게 요구하고 있다. 동해 시민들도 원하고 있다. 정체되어 있는 동해시가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는 동해시의 대전환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동해시 대전환을 위해 정치인의 한사람으로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지은이 최석찬은 민주당 활동하기가 경상도 보다 더 어렵다는 강원도 그것도 동해안에서 34년 외길을 걸어왔다.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과 광주항쟁의 역사적 사실은 그의 인생경로를 바꾸었다. 26살 청년의 뜨거운 심장은 그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다.

여회의 각종 선거를 치르면서 단 한 번도 지역에서 이기지 못했지만, 승리를 향한 노정을 포기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2018년 절반의 승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길을 나서려 하고 있다. 지역의 정치 지형은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하지만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손 맞잡고 그 길을 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