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지역 호국영웅 알리기 프로젝트 ②>영월 녹전전투의 영웅 김해수 경감
<우리지역 호국영웅 알리기 프로젝트 ②>영월 녹전전투의 영웅 김해수 경감
  • 김지성 기자
  • 승인 201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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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강원도 전투경찰 제8대대 제1중대장으로 영월화력발전소 -

사수 명령을 받고 치열한 교전 끝에 대원들과 함께 순직 -

 

1924년 9월 강원도 통천군 고저읍 보통리에서 태어난 김해수 경감은 강원도 전투경찰 제8대대 제1중대장으로서, 영월화력발전소를 탈환 사수하라는 사령부의 작전명령에 따른 47명의 결사대를 지휘하여 발전소를 향해 진군 중 1950년 7월 8일 14:00경 중동면 녹전리에서 인민군 대부대를 만나, 치열하게 교전하여 적 73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으나, 다른 대원들도 함께 희생되었다.

전쟁 발발 후 7일째인 1950년 7월 1일 강원도 내 경찰서 가운데 영월과 울진을 제외한 다른 경찰서는 전부 철수하였다. 강원도경찰국비상경비사령관 윤명운(尹明運) 경무관은 사령부를 제천에 이동 설치하고 철수 경찰병력을 수습 확보하는 한편 한국전력의 심장이 되는 영월 사수를 결심하였다.

영월은 한국에 있어 극히 중요한 광업지대였다. 10만kw를 발전하는 화력발전소와 세계에서도 굴지의 구래 중석광산과 마차와 함백의 탄광이 있을 뿐만 아니라 관내를 철수한 강원경찰로서는 영월과 울진이 최후의 거점이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상동으로 철수 주둔하고 있던 전투경찰 8대대는 영월발전소를 탈환 사수하라는 사령부의 작전명령에 의하여 제1중대장 김해수 경감을 대장으로 하는 47명의 결사대를 편성 영월발전소 탈환을 명하였다. 이에 따라 1950년 7월 8일 결사대는 상동을 떠난 1시간 후인 14:00경 상동에서 약 14km 떨어진 녹전리 입구에 도착했다.

녹전 면소재지를 정찰하여보니 뜻밖에도 면사무소를 비롯한 여기저기에 인공기가 나부끼고 있어 김해수 중대장은 차량을 정차 우회하려 하였으나, 당시 노면이 협소하고 장마철 진흙탕으로 차량 운행 우회가 여의치 못하였으며 적이 근접하고 있어 진퇴유곡에 빠진 김 중대장은 싸우다 운명을 결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였다. 비장한 각오로 전투준비를 명하고 차량으로 계속 전진 유효사거리인 곡각지점에 이르러 전 대원을 하차시키고 고지로 이동 작전을 준비한 후 망원경으로 다시금 정찰을 실시하였을 때는 이미 적이 아군을 포위했다.

김 중대장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터라 주저없이 선제공격 명령을 내려 북한군에 큰 피해를 주었으나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고 공격 하여오는 그들에게 사력을 다하여 전투에 임하였으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아군의 피해가 속출 실탄까지 떨어져 육탄전까지 벌이는 악전고투 중 끝내 김해수 중대장은 가슴에 적탄을 맞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김해수 중대장은 전사하고 석상익 경위 지휘하에 용전했으나 역부족으로 말미암아 석상익 경위마저 전사하자 전열이 와해되었다.

지휘관을 잃은 잔여대원은 중과부적으로 제2전선으로 후퇴 하였으며 녹전 전투로 아군 10명 전사, 실종 14명, 부상 4명의 피해를 당했으며, 적 73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