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한국 부채 위기, 금융완화 시대 종식의 교훈
(논평) 한국 부채 위기, 금융완화 시대 종식의 교훈
  • 엔사이드편집국
  • 승인 20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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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사 채무불이행 충격으로 단기금리 급등

한국 정부 당국자, 위기 확산 막았다고 밝혀

 

서울에서 기차로 몇 시간 거리에 있으며, 야생동물이 가득한 호수를 끼고 있는 한국 레고랜드는 금융 안정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전세계 악전고투의 상징이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레고랜드 시행사의 2,050억원 채무불이행 사태는 1,690조원 규모의 국내 대출시장에 세계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타격을 입혔다. 또한 금리 상승이 전세계 부동산 시장을 강타하는 현 상황에서 이번 사태는 (금년 상반기 IMF가 “회복력이 있다”고 평가한) 한국과 같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국가의 금융 시스템조차도 위기 확산의 위험에 직면해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행은 세계 여러 중앙은행 중 가장 빠른 시기인 작년 8월부터 금리 인상 주기를 개시했으며, 한때 20여 년 이래 최고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던 물가상승률의 억제를 위해 여전히 분투하고 있다.

레고랜드 시행사 채무불이행 사태는 국내 대출시장의 어려운 상황을 보여주는 첫 번째 주요 사건이었으며, 그 여파로 단기여신 금리가 급등했다.

수십 년 간 초저금리의 위험성을 강조해 왔던 전 국제결제은행(BIS) 수석 이코노미스트 윌리엄 화이트(William White)는 한국의 사례가 “분명히 위험을 알려주는 전조”라고 밝혔다. 화이트에 따르면 “오랜 기간 여신 확대와 불건전한 금융 관행(imprudent financial behavior)을 조장했던 국가들이 긴축 정책을 펴고 있으며, 이는 그 동안 피하고자 했던 위기를 촉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레고랜드는 성대하게 개장했다. 레고 블록으로 형상화한 한국 유명 랜드마크들을 내세운 레고랜드는 국내 최초의 글로벌 브랜드 테마파크이다.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상대적으로 저개발되었으며 지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 이후 부채에 시달려 왔던 강원도에게 이번 레고랜드 개장은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은 관광산업을 부흥시킬 좋은 기회로 다가왔다.

그러나 9월 29일, 김진태 신임 강원도지사는 레고랜드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레고랜드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빌린 채무의 상환을 불이행하였다. 김 지사의 정치적 라이벌인 최문순 전임 강원도지사가 체결한 계약에 따라 강원도는 강원중도개발공사의 최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정부기관의 채무상환 거부는 이미 금리상승 압력을 받고 있던 자금시장에 충격을 가져왔다.

11월 25일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 곳의 도(道)에서 저지른 하나의 실책이” “시장의 신뢰를 크게 흔들리게 했다”고 밝혔다.

단기 여신금리가 급등하자 한국 정부 당국은 수십 억 달러 규모의 금융 시장 지원을 약속했다. 이러한 조치로 인해 금융시장의 붕괴는 막을 수 있었으나, 단기 자금시장 금리는 최근 약 14년 이래 최고 수치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 이전에도 한국에는 전면적인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요소들(가계부채 급증 및 아파트 가격 하락)이 존재하고 있었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전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 바 있다. 또한 한국과 인접한 중국의 경우, 최근 2년 간 유례없는 부동산 시장 위기로 신음하고 있으며, 부도율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DBG 그룹 홀딩스의 마톄잉(Ma Tieying) 이코노미스트는 “한·중 양국은 최근 기업 부채 급증을 겪은 아시아 경제 대국”임을 언급했다. 또한 “이로 인해 양국은 글로벌 유동성 긴축 및 수출 부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금리 또는 수익 상의 충격에 상대적으로 높은 취약성을 보이게 된다”고도 밝혔다.

레고랜드 시행사 강원중도개발공사의 채무불이행과 관련된 금융공학기법은 프로젝트파이낸싱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ABCP)이다. 국내 시장 규모가 약 35조 원으로 추산되는 PF-ABCP는 광범위한 국내 부동산 부문의 핵심 자금조달 수단이다. 증권사가 일부 신용 보강을 제공하며,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6월말 기준 국내 증권사의 부동산 PF 위험노출액(exposure)은 자기자본 대비 평균 39% 수준이다.

12월 2일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상기 어음 중 약 11.3조가 2022년 말까지 만기 예정이다.

레고랜드의 시행사와 운영사는 별도의 법인이며, 이번 채무불이행 사태는 운영사가 아닌 시행사에 의해 발생하였다.

레고랜드 코리아를 비롯해 전세계 10개 레고랜드 리조트를 운영하는 멀린 엔터테인먼트(Merlin Entertainments)는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는 정상 운영 중”이며 “해당 부채는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 및 그 재무∙운영에 아무런 직접적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시행사인 강원도개발공사와 강원도 측은 본지의 인터뷰 요청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번 사태의 영향이 단기 여신시장에 국한되며, 금융 시스템은 여전히 양호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여파는 여전히 감지되고 있다.

강원도 도청 소재지이자 레고랜드가 위치한 춘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민재 씨는 금리 인상의 여파에 대비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이자가 2배가 되어서 조금 걱정이다”라고 한 씨는 11월 말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춘천발 전국 신용 경색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한 씨는 “부채를 다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은행 총재의 말은 이번 사태가 다른 회사에도 영향을 준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수십 년 간의 경험으로 인해 한국은 기업 부도 위험에 대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를 유발한 기업의 줄도산은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여러 저축은행의 도산을 낳은 2011년 건축대출 부실 사태 또한 마찬가지였다.

상기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정책당국자들은 다른 나라보다 적극적 개입을 하려는 경향이 강하며, 세계에서 가장 안전성이 높았던 국내 금융시장이 위기를 맞게 되자 이번에도 지원에 나섰다.

강원도의 채무불이행 사태 후, 정부 당국은 시장금리 인상 억제를 위해 50조원+α 규모의 시장지원 제공, 담보 관련 규정 변경을 통한 유동성 확대, 은행의 기업어음 매입, 추가 PF 보증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최근 발표된 다수의 조치에 따라 국내 여신 시장에 채권 스프레드 축소, 단기여신 금리 안정화 등 일부 회복세가 나타났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캐슬린 오(Kathleen Oh)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이 투입을 발표한 예상보다 큰 규모의 시장안정화 기금은 최근 단기자금 시장의 신용경색을 해결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또한 “여신시장 신뢰도 회복을 위한 국내 정책당국자의 노력에 있어 가장 큰 난관은 바로 현재의 거시경제 상황이다. 물가상승이 지속되는 한 한국은행은 유동성 확대와는 상반된 통화정책을 추구해야 하며, 이로 인해 금융시장 긴축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김진태 도지사도 결국 한 발 물러서며, 강원도가 12월 15일까지 기업어음 리패키징 대출 (commercial paper repackaging loans)을 모두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급여 등 단기 금액 지급을 위한 자금조달에 활용하는) 기업어음의 금리는 레고랜드 시행사 채무불이행 이후 상승한 최고 수준을 거의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졌던 보험사인 흥국생명이 영구채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아시아 영구채 시장에서 대규모 매각이 발생하자, 이번 사태의 아시아 전역 파급 위험에 관심이 모아졌다.

무디스 투자서비스의 아누슈카 샤(Anushka Shah) 국가신용등급 담당 부사장은 “여전히 낮은 연체율 및 양호한 이자 상환율을 감안할 때, 지난 달 발생한 사태가 현재는 전반적으로 진정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히며, “다만, ABCP 시장 내 PF 관련 대출이 더 광범위한 기업 여신에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는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당국자들은 위기 확산을 막았다고 블룸버그 측에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전세계 금융당국이 경제 침체, 유럽의 전쟁 및 에너지 위기와 더불어 2008년보다 높은 수준의 부채 지수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균형을 실현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G20 국가 비금융기업의 부채액은 GDP의 96.9% 수준으로, 2008년보다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한국의 경우 기업부채가 GDP의 95%에서 116.5%로 증가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유발한 모기지 붕괴 사태를 예견하여 유명해진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는 금년 초 블룸버그의 Odd Lots 팟캐스트에서 경제 전반에 대해 언급하여 “대응 여력이 아주, 아주 제한적이다”라고 말했다.

물가상승률은 1970년에도 높았으나, “이번에는 금융 및 부채 위기로 인해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다. 따라서 안타깝게도, 어떤 조치를 취하든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