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유곡초교 전투․ 조돈철 중령
예산 유곡초교 전투․ 조돈철 중령
  • 김지성 기자
  • 승인 201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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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군 도곡면 상반천리 출생,예산 유곡초교 전투에서 활약한 공로로 충무무공훈장 수여

조돈철(趙敦鐵) 소위는 1923년 7월 강원도 삼척군 도곡면 상반천리에서 태어나 육사 9기로 임관했다. 1950년 7월 11일 예산 유곡초교 전투에서 적 60명을 사살하고 소총 58정을 노획하는 공로로 충무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북한의 남진 공세로 국군과 미군이 수원-천안을 철수하여 금강방어선을 편성할 무렵인 1950년 7월 11일 예산지역 미 24사단 34연대에 배속된 제2기병 수색대대 6중대는 적정 수집을 위해 예산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당시 기병대대는 북한군과의 접촉을 유지하면서 태릉으로 철수한 후 6월 27일 15시경에 한남동에서 훈련용 단정으로 한강을 건너 병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조돈철 소위의 인솔 아래 주력은 예산으로 이동 중 공주부근에서 아군 복장으로 위장한 적의 유격대가 양민을 학살하고 도주한 사실을 확인, 정찰을 위해 침투한 적을 포획하기로 하였다.

공주에 중대본부 요원만 남겨놓고 7월 11일 오전 7시 예산으로 출발한 기병 제 6중대는 산정리(유구 남쪽 4킬로미터) 부근에서 민간인 고발에 따라 적이 국군복장으로 가장하고 지프차를 타고 와서 민간인을 살해하고 도주했다는 것을 확인, 근처에 반드시 적이 잠복해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대원은 모두 말에 내려 도로를 따라 전진 중 맞은편에서 지프차가 달려오는 것이 보여 적임을 다시 확인하고 근처에 은신 대기하고 있다가 급습으로 적 3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하였다.

포로 심문 결과, 적은 북한군 제6사단 유격대원임을 밝혀냈다. 때마침 또 민간인 신고에 따라 유곡 초등학교 교정에서 북한군이 집결하여 환영행사를 거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조돈철 소위는 즉각 소대원을 지휘하여 유곡초등학교의 가장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하여 적 2개 중대가 집결행사를 열고 있는 곳을 향해 일제히 맹렬한 사격을 가하였다. 불의에 아군의 기습을 받은 적은 우왕좌왕 도주하는 것을 계속 추격 격멸함으로써 적 60명을 사살하고 소총 58정을 노획하는 대전과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