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모님, 저 하늘에 별이 되소서
(기고) 장모님, 저 하늘에 별이 되소서
  • 엔사이드편집국
  • 승인 202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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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래 중앙대학교 교수 행정학 박사
김창래 중앙대학교 교수 행정학 박사

 

20여년전 한 여자 분을 만났다, 우리는 몇 달을 만난 뒤 그녀의 어머님

지금의 장모님을 만나러 갔다. 장인어른은 돌아가셨고 집은 아주 작은 오두막 집이었다. 장모님은 홍두깨를 주고 한번 해보라고 하여 저는 있는 힘겄 내리치다고 깨를 털기는커녕, 홍두깨를 완전히 박살 냈었다.

장모님은 그런 모습이 귀 여웠는지 우리의 결혼을 허락 해 주었다.

저는 그 당시 130KG, 우리처는 45KG, 현대판 늑대와 야수 였다.

우리 딸 하늬가 태어나고 저는 미래의 멋찐 아빠가 되고자 대학원에 진학했다. 저의 처는 저의 뒷 받침 때문에 식당일, 정육점등 거의 모든 일을 섭렵 하면서 저에게 용기를 주었다. 공부를 시작한지 10여년만에 박사가 되었고 대학교수가 되었다. 모두 저의 처 덕분이었다. 주중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교수로써 학교강의를 했다. 너무 빡빡한 일정, 퇴직하면 장모님과 저의 처에 잘해 주리라 마음의 약속을 하며 열심히 일도 하고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 켰다.

그런데 6년전부터 장모님이 많이 아파 하셨다. 명절에는 찾아 뵙고 장모님은 괜찮겠지, 괜찮겠지, 마음속으로 우리를 합리화 시키고 있었다. 최근에는 더욱 나빠 지셨다. 아무래도 한번은 뵈야 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갑자기 코로나가 걸렸고 1월8일 처는 오늘 장모님을 뵀는데 설 연휴는 넘길 것 같다고 얘기하여 조금 안심이 되었다 사무실에 일하고 있는데 저의처가 울면서 전화가 왔다. 장모님이 돌아 가셨다고 머리가 멍해졌다. 이제는 다시는 장모님을 뵐 수 없다는 허탈 감에 죄책감이 닐려 왔다.

다음날 입관을 하면서 장모님을 뵈니 30Kg도 안되는 모습, 눈에는 안대를 하시고 계셨고 우리는 한명씩 장모님과의 끌어 안아 드렸다. 화장을 해서 춘천 안식원으로 모셨다. 그 와중에서도 저는 우리 사무실 정기총회 때문에 이틀간을 동해로 내려 갔다. 아무리 저 자신을 저가 위로 해도 저는 장모님한테 너무 죄스러운 사위, 불효자 였다. 장모님에게 마지막으로 올려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승의 고생은 모두 잊어 버리고 저 하늘에 별이 되어 우리를 지켜 봐 주시길 바라며 저 하늘나라에선 아프지 마시고 힘들지도 마시고 바람과 친구 하면서 이곳 저곳을 편하게 여행 하시는 장모님이 되시길 기도 한다. 장모님, 어머님 사랑합니다 우리를 용서 하시고 우리 모드를 지켜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