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치연구소 목요칼럼) 시대정신 공화주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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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사이드편집국
  • 승인 2023-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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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하나를 소개하며 글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2월 26일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정책 성과 및 동향 분석 기초연구’에 따르면, 갤럽월드폴(Gallup World Poll)의 우리나라 행복 수준은 2021년 10점 만점에서 6.11점이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우리나라보다 낮은 나라는 그리스, 일본, 멕시코, 폴란드, 콜롬비아, 튀르키예의 여섯 국가였습니다. 여기서 행복 수준이란 그 나라 국민이 스스로 인식하는 행복의 정도를 의미합니다.

성공한 국가, 위기의 국민

국민의 행복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는 어디였을까요? 핀란드가 7.79점으로 1위를 차지했고, 덴마크, 이스라엘이 뒤를 이었습니다. 미국은 6.96점, 영국은 6.87점, 독일은 6.75점, 프랑스는 6.66점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점수가 주요 선진국들과 동일한 6점대라는 점에서 그 차이가 크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본(6.09점), 멕시코(5.99점) 등과 함께 낮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21세기에 들어와 우리사회의 위상이 20세기와는 다르다는 점은 국가적 자부심입니다.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진입했습니다. 수평적 정권교체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도 안정됐습니다. 그 결과 비서구사회에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국가로 평가돼 왔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K-문화가 지구적으로 큰 환영을 받아 김구선생이 소망했던 ‘문화국가’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갤럽월드폴에 담겨 있는 의미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적지 않은 국민이 ‘성공한 국가’에서 ‘행복하지 않은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갤럽월드폴에서 제 시선을 끈 결과가 하나 더 있습니다. ‘곤란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친구나 친지가 있는가’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 질문에 ‘없다’고 답변한 비율에서 우리나라는 18.9%를 기록함으로써 OECD 회원국에서 네 번째로 높았습니다. 우리보다 사회적 고립도가 심각한 국가는 콜롬비아, 멕시코, 튀르키예뿐이었습니다.

이 자료들이 함의하는 바는 분명해 보입니다. 산업화 30년과 민주화 30년이 지난 현재, 국가는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작 적지 않은 국민은 행복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고립감을 느낀다는, 다시 말해 삶의 위기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공한 국가, 위기의 국민’은 최근 우리 사회가 서 있는 자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언명이라고 저는 보고 싶습니다.

다시 생각하는 공화주의

이 지점에서 저는 헌법 제1조 제1항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광복 70여 년 동안 헌법은 여러 차례 개정돼 왔습니다. 변하지 않았던 것의 하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제1조 제1항이었습니다. 이 천명은 우리 현대사를 이끌어온 마스터프레임이자 우리나라를 일차적으로 규정하는 아이덴티티입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하려는 것은 민주공화국에서 ‘공화국’의 의미입니다. 사실판단의 관점에서 헌법이 제정된 당시 공화국이라는 말에는 ‘비(非)군주국’이란 의미가 담겨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더하여 가치판단의 관점에서 공화국을 지탱하는 이념인 공화주의의 의미를 성찰하는 것은 2020년대의 현재적 상황에서 중대한 과제입니다.

전통적으로 공화주의는 덕성을 갖추고 공공성에 헌신하는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사회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했습니다. 정치철학적으로 공화주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자유주의적 해석과 경쟁하고 이를 비판해 왔습니다. 자유주의가 타자의 간섭으로부터의 ‘소극적 자유’를 중시한다면, 공화주의는 스스로를 지배할 때 진정으로 자유로운 ‘적극적 자유’와 사회 구성원으로 동동한 권리를 누리는 ‘비지배적 자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공화국(republic)이란 말의 기원을 이룬 라틴어인 레스 퍼블리카(res publica)는 그리스어인 폴리스(polis)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는 ‘한 사람이 지배하는 곳은 폴리스가 아니다’라고 노래했습니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공동의 법과 이익에 의해 결속된 공동체로서의 국가가 레스 퍼블리카, 다시 말해 공화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공화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 군주의 자의적인 1인 통치에 맞서 시민들이 자유와 권리를 주창하기 위한 이념이자 사상이었습니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결이 다르다는 점을 여기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학자 채진원이 지적하듯, 민주주의는 다수파에 의한 소수파 지배, 즉 다수결 지배를 인정하게 됩니다. 반면에 공화주의는 다수파와 소수파의 존재를 모두 인정하며 누가 국가권력을 획득하더라도 견제와 균형을 통한 공존, 연대, 통합을 추구합니다. 공화국의 이상은 시민 모두가 ‘같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 만들기에 있습니다.

시대정신으로서의 공화주의

21세기가 시작한 지 20여 년이 흐른 우리 사회에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위기의 국민 다수가 소망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좀 더 공정하고 평등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공정과 평등이 중요한 까닭은 간명합니다. 공정과 평등의 가치는 적극적 자유와 비지배적 자유를 가능하게 합니다. 적극적 자유와 비지배적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때 우리는 ‘같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같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지 않는 나라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국가입니다. 공적 가치보다 사적 이익을 우선하는 나라입니다. 공화주의가 요구하는 시민적 덕성·참여·신뢰의 윤리를 내면화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신뢰의 상실과 보이지 않는 정부가 어두운 시대를 가져올 수 있다’는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경구만큼 현재 우리 사회가 서 있는 위태로운 자리를 증거하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아렌트는 이를 ‘공화국의 위기’라 명명했습니다.

자, 그럼 갤럽월드폴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 국민 다수의 소망은 행복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공한 나라는 행복한 나라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행복한 나라는 자유로운 나라, 공정한 나라, 평등한 나라, 다시 말해 ‘같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일 것입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선 새로운 시대정신과 정치철학으로 공화주의를 제가 소환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학 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코렛 펠로. <세상을 뒤흔든 사상>, <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 등 저서 및 편저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