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장돌뱅이 사진가”
“부부 장돌뱅이 사진가”
  • 편집국
  • 승인 201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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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Nnews/강원)

이규상 / 출판인, 눈빛출판사 대표

정영신·조문호 부부 사진가를 볼 때마다 나는 세상의 어느 부부가 저렇게 붙어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대부분의 부부들이 쉰 살을 고비로 데면데면 살아간다는데 이들은 언제나 일심동체의 부부애를 과시한다. 나는 그것을 이들이 세계사진사에서 보기 드문 부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전국의 장터를 함께 순례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래서 그들의 금슬의 반은 5일장을 돌면서 형성된 동료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조문호 사진가는 지금까지 반평생은 사진을 찍고 반평생은 술집에 앉아 있던 사람이다. 그런 그를 만년에 장터로 이끈 이가 정영신 사진가다. 소설가이기도 한 정영신은 3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5일장 모두를 촬영한 근력 있는 사진가다. 전국 522곳의 5일장을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그동안 호기롭게 살아온 조문호 형이 운전기사를 자청하며 마지막 장터까지 함께 돈 것도 그러한 저력과 끈기에 기가 질렸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의 5일장은 소통의 공간이었다.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거나 교환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대처의 소식을 듣거나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광장이요 공공공간이었다. 게다가 동학혁명이나 3·1운동도 장날을 계기로 전개되었다 하니 5일장의 사회적 의미는 지대한 것이었다.

1970-8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왔다.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윗세대들은 당신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오늘의 경제대국을 이뤄놓았다고 자랑하지만 오히려 교묘하게 가난해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부인해선 안 될 것이다.

남들은 100년 200년 걸려 이뤄온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우리는 불과 2-30년 동안 해치우면서 우리의 전통은 불도저로 밀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시인 김수영 식으로 말하면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은 것일진대 우리는 남겨두어야 할 것들을 사정없이 솎아내 버렸다. 가족이 해체되고 경조사를 함께해 온 친척이 사라졌으며, 약자를 배려하고 슬픔과 고통을 함께하던 미풍양속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오로지 능률과 성과 그리고 경제적 부(富)만이 인간사의 가치기준이 되어 버렸다.


5일장은 서구형 대형 할인마트처럼 대량으로 상품이 거래되던 곳이 아니라 5일간의 일용한 양식과 물품을 장만하던 소박한 유통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강점은 서구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인간들 간의 교류와 정(情)이라는 무형의 물품이 함께 유통된다. 5일장은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보다는 외래문화와 경제적 효율성을 앞세워 온 사회에서는 적합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개점한 이케아 쇼핑몰 앞에 줄선 사람들을 보라. 그러니 어디 조문호의 스산한 장터 사진이 보여주듯이 5일장인들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허리 굽은 노인들만의 시장으로 방치해 둔 것이다. 다행히 요즘은 아파트 단지에도 매주 장이 서는 것을 보면 ‘전통시장 살리기 운동’이 비관적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탕아가 뒤늦게 뉘우치고 귀가하듯이 비로소 전통으로의 복귀가 시작된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승리자보다는 패배자를, 강자보다는 사회적 약자를, 가해자보다는 피해자를 기록하는 사진 장르이다. 따라서 사회의 음지와 사라져가는 것들을 찍는 다큐 사진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다큐 사진가가 즐겨 감수해야만 하는 숙명인 것이다. 숙명에 충실한 사진가만이 소멸되어 가는 것들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정영신·조문호 부부는 공교롭게도 둘다 다큐 사진가이므로 그들의 생활이나 작업이 두 배로 힘들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남들은 정년퇴임할 나이에 걸핏하면 멈춰 버리는 고물자동차를 타고 그들이 장돌뱅이처럼 장터를 돌며 찍으려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그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과 정체성이 아직 거기에 끝물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금슬은 보너스다.

박종현기자 gw@at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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