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춘 국가보훈처장 「강릉학도 6.25참전 기념비」 제막식 참석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강릉학도 6.25참전 기념비」 제막식 참석
  • 편집국
  • 승인 201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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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막식 7. 6(월)14:00, 강릉통일공원에서 개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오는 6일 강릉통일공원에서 개최되는 「강릉학도 625참전 기념비 제막식」행사에 참석한다.

이날 제막식에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하여 최명희 강릉시장, 정연봉 8군단장, 김성일 23사단장, 차용재 공군18전투비행단장 등 군 지휘관과 625참전 강릉출신 학도병 및 유족 등 3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강릉학도 625참전 기념비는 625 당시 조국의 위기 속에 펜 대신 총을 들고 어린 나이에 고향과 조국수호의 일념으로 전쟁에 뛰어 들었던 강릉지역 5개교 424명의 꽃다운 어린학생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

지난 2011년에 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조규정)가 창립되면서 강릉 학도병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추진된 기념비 건립사업은 2015년 6월 9일 준공되었으며, 강릉통일공원내에 국가보훈처 150백만원, 도비 100백만원, 시비 150백만원, 자부담 14백만원 등 모두 414백만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었다.

기념비는향후 강릉지역 학도병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안보교육을 위한 체험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강릉학도 625참전 기념비 건립

강릉출신 학도병으로 강릉농업중학교, 강릉사범학교, 강릉상업중학교,강릉여자중학교, 주문진수산중학교, 성심학교의 학생들이 어린나이에 625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한다.

강릉학도병은 6월 27일 강릉사범학교 학생 34명이 제8사단 사령부 및예하 부대에서 시작되었다. 사단병력과 함께 했던 강릉지방 학생들의 희생적 군무지원활동은 학도병의 효시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학교는 소개령으로 수업이 될 리 없었고, 학도병들의 활약은 전쟁기간 내내 이어졌다. 강릉을 사수하던 국군 제8사단은 낙동강 전선으로 이동배치 되었고, 이 시기 학도병들은 가족과 함께 피난길에 오르거나,강릉에 남아 은둔생활을 하거나, 제8사단을 따라 종군하기도 했다.

대구와 부산을 아울러 결성되는 ‘대한학도의용대’에 33명의 강릉학도병들이입소하였고, 이들은 3사단 22연대에 배속되어 포함전투를 비롯한 실전에투입되기도 했다.

이들의 활약은 1951년 2월 28일 대통령령으로 학생 복귀령이 내려지면서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리고 학교에 돌아온 학생들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그리고 학교에 돌아온 학생들은 다시 학도방위군에 자원하여 울산 야전병원에서 간호보조원 교육을 이수하고 환자관리 및 취사업무까지수행했다.

1950년 9월 중순 강릉에는 국군 제1군단이 주둔했고, 주문진으로 상륙한 제3사단은 10월 1일 통일의 염원을 안고 38선을 넘어 북진을 단행했다. 이 무렵 강릉 학도병 100여명은 군단 사령부에 편성되어 경계임무를 비롯한 각종 지원업무를 수행하면서 북진대열에 동참하였다. 이들의 북진행로는 원산을 거쳐 함흥이원성진청진으로 이어졌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흥남에서 피난민 행렬과 함께 퇴각 했다.

국군이 북진에 주력하는 동안 강릉에서는 10월 16일 북한군패잔병 약 6천여명의 침공을 받았다. 국군보충대경찰한청대원 등을 비롯해 강릉경찰서에서 창설한 학도 경찰대 1백여명이 강릉 사수에 동참하였다. 병력과 무기에서 중과 부족이었던 전황에서 인물적 희생은 참혹했다.

강릉학도병. 이들은 적군을 만나면 용맹한 전사가 되었고, 피난행렬을만나면 치안을 위한 경찰이 되었고, 시민들을 만나면 전황을 보도하며선무활동을 하였고, 다친 자와 부상병을 만나면 구료하며 선무활동을 하였고, 군부대 위문공연과 출격한 비행편대의 무사귀환에 꽃다발을 올리는 수호천사가 됐다.

믿고보는 뉴스 엔사이드& 김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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