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속 진실 추적하는 화재조사관
잿더미 속 진실 추적하는 화재조사관
  • 김지성
  • 승인 201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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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만큼‘열일’하는 화재조사관을 아십니까?

강원도소방본부 화재조사관 활약…화재피해 구제 매년 늘어 -
 

지난 8. 21. 양양군 다세대 주택에 거주하는 조모씨는 외출 중 세탁기에서 불이 나 집안 전체로 옮겨 붙어 망연자실했지만, 화재조사관이 세탁기 결함에 따른 화재로 제조물책임법에 의해 보상 가능한 화재임을 안내받고, 제조회사 고객센터에 문의한 결과 세탁기 및 내부 복구비용 등 총 3천여만 원의 보상을 받았다. 또한  2. 19. 원주시 반곡동 소재 안모씨가 운영하는 자동세차장에서 터널식 자동 세차기에서 전기적요인에 의해 화재가 발생해 영업에 큰 손해를 입었으나, 출동한 화재조사관이 제조물책임법에 의해 보상 가능함을 안내, 제조회사에 문의한 결과 총 5천여만 원의 피해보상금을 지급받았다.

잿더미 속 진실 추적하는 화재조사관

소방서 화재조사관의 도움으로 화재피해를 보상받는 경우가 매년 늘고 있다. 소방서가 불을 끄는 것은 물론 화재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구제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평가다. 12일 강원도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강원도 내 제조물화재 피해보상 정보제공 건수는 총 30건으로 2014년 14건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는 12월 10일 기준 26건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화재조사관은 화재를 진압하고 사람을 구출하는 소방관과 달리 화재의 원인을 규명하고, 발화지점을 찾아내고, 화재피해를 분석하는 역할을 한다.

화재조사관은 불이 나면 화재를 진압하고, 사람을 구출하는 소방관들 사이에서 카메라 하나 들고, 현장 이곳저곳을 누벼 ‘119의 꽃’ 이라 불리기도 한다.  위의 사례 역시 화재조사관이 제조물 결함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한 것을 밝혀 화재피해자가 제조물책임법에 의거한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중간 연결고리 역할을 한 탓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지난 3년간 강원도 화재조사관은 제조물 화재로 재산피해를 입은 82명에 대하여 약 5억 9천여만 원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데 조력자 역할을 해 왔다.

전국 최고 수준의 강원도 화재조사관

강원도에는 총 48명의 화재조사관이 소방서별로 1명씩 3교대로 근무를 하고 있다. 모두 중앙소방학교에서 주관하는 12주간의 전문교육을 이수 후 화재조사관 자격을 취득하거나,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화재감식평가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가다.

소방관은 불을 끄는 일이 주된 업무지만, 화재조사관은 불을 직접 낸다. 화재는 그 양상을 예측할 수 없기에 다양한 상황을 재현해서 화재를 내는 실험을 하고 그에 따른 원인 추론 및 연구 논문을 매년 작성해서 관련학회지에 등재하기도 한다. 또한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한 화재감식경연대회는 철거를 앞둔 실제 주택이나 주택 내부를 모형으로 한 중고 컨테이너에 불을 내고 진화한 후 화재조사관이 입장, 발화지점을 찾아내고, 화재원인을 추론하는 방식의 경연대회이다.'

2008년 강원도에서 전국 최초로 시작한 감식경연대회를 모티브로 같은 방식의 전국 감식경연대회가 올해 11월 소방청 주관으로 강원도소방학교에서 열렸다. 19개 시,도 대표 화재조사관이 모여 경연을 펼친 이번 대회에서 강원도는 전국 2위에 입상해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수상했다.이에 앞서 지난 4월 대구에서 열린 국제 화재조사 학술대회에서 강원도는 ‘폴리염화비닐 저압 가스호스의 열적특성 및 화재감식 기법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로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렇듯 강원도 화재조사관은 화재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활동을 통해 전문성을 키워나가고 있고, 이는 전국 유수의 대회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입상하며 그 실력을 입증하고 있다.

도내 연평균 2,300여건의 화재가 발생하는 가운데 약 95% 이상의 화재에 대한 원인규명율을 보이는 것도 강원도 화재조사관의 능력이 어느 위치에 와 있는가를 볼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화재조사를 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되어야

강원도 화재조사관은 도내 모든 크고 작은 화재현장에서 엄청난 연기를 마셔가며, 밤을 새고, 때로는 식사도 거르며 화재원인과 연소경로를 찾는다. 비단 강원도 화재조사관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화재조사관이 다수의 화재현장 경험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 및 현장감식 기법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는 팩트다.  화재조사관은 관리자가 되기 전까지 보직변경도 거의 없어 어느 집단보다 화재감식․감정분야에서 만큼은 최고이고, 그에 대한 자긍심 또한 대단하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축적과 현장감식능력 향상의 노력들이 무색할 정도로 현재 소방기본법에서는 화재조사에 가장 중요한 부분인 현장 보존과 통제권한, 증거물 수집 등에 대한 내용이 전무한 상태다.

전쟁을 대비해 창, 칼을 갈고, 무술을 연마해 백이면 백 승리할 사기까지 하늘을 찌르는데 정작 전쟁터에는 가보지도 못하는 격이다.

화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기에 화재를 예방하고 진압하는 것 뿐만 아니라 원인을 밝혀내고, 피해 조사를 통한 국민의 안전대책 환류까지 소방이 맡아서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논리의 화재조사에 관한 법률이 지난 18, 19대 국회에서 발의 되었지만, 경찰의 강한 반대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20대 국회에서도 역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유사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에는 소방의 화재조사 권한을 명확히 규정하고 화재조사의 방법과 절차, 기반조성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화재조사는 화재예방부터 진압, 예방정책 수립의 근간이다. 소방기본법에도 소방의 화재조사 권한은 명시되어 있다. 화재현장에서 범죄혐의점이 발견되면 경찰의 특별한 요구가 없더라도 소방은 수사협조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 공동대응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총 43,413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일일평균 119건의 불이 나는 셈이다. 이제 화재조사의 주체가 누구냐를 놓고 벌이는 설전은 끝내야 한다. 화재현장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다만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대전제 아래 국민을 위한 공복으로서 소방과 경찰은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국회에 계류된 화재조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또한 법안 통과가 곧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온 국민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