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어진 봉안으로 영월군민과의 세 번의 인연을 맺다
단종어진 봉안으로 영월군민과의 세 번의 인연을 맺다
  • 박종현 기자
  • 승인 202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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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선현표준영정 제100호인 단종어진의 봉안식이 28일(일) 오후 1시부터 4 시20분까지 영월부관아(관풍헌)와 세계유산 장릉 경내에 위치한 단종역사관에서 거행됐다.

어진봉안식은 오후 1시부터 20분간 영월부관아(관풍헌)에서 어진을 신연에 싣는 의식인 고동가제, 13시20분부터 14시까지 관풍헌에서 장릉경내 단종역사관까지 봉안행렬이 이어지고 14시부터 16시20분까지 사귀를 쫓고 경사로운 일을 맞이하는 벽사진경의식, 향정과 신연을 봉안하고 어진궤를 신연에서 받들어 탑상에 어진을 봉안하는 봉안의식과 작헌례, 공식행사, 축하공연, 군민과 관광객의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11.28일은 음력으로 10월24일로 이날은 564년전 인 1457년 숙부인 세조에 의해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승하하신 날로써 역사적의미를 갖고 있다. 단종어진봉안식은 당초 제54회 단종문화제(4.30-5.2) 기간 중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됐다.

단종어진을 모실 봉안행렬은 「단종어진추사의궤(端宗御眞追寫儀軌) 5편 봉안제 의주(儀註)에 의거 단종어진 이봉반차도(移奉班次圖)를 기준으로 진행되며 인원214명, 말19필, 신연, 향정, 의장기 등 38점이 동원되나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100명 이하로 진행됐다.

강원도 영월은 조선6대왕(1441-1457)이 승하하신 곳이자 영월군민 삶 속에서 영원히 영면에 드신 곳이다. 영월군민은 단종 승하 후 끊임없는 추모와 의례로 소통을 이어왔고, 단종어진은 영월군민과 단종의 얼이 소통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단종어진은 영월군민의 마음을 모아 2021년 4월 정부 선현표준영정 제100호 지정 받았다. 단종어진은 영월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단종을 지키려 했던 268위의 충의정신으로 기억될 것이다.

단종어진의 용모는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용모기록과 국보 제317호인 태조어진용안, 2016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발표한 세조어진 초본용안을 참조하여 추사(追寫)로 그려졌으며 규격은 가로120센티미터 세로200센티미터로 비단에 채색되었고, 정면 전신교의좌상으로 전통적인 장황기법인 족자로 제작되었으며 낙영과 유소가 함께 제작됐다.

영월군(군수 최명서)은 단종어진과 함께 단종어진의 제작 전 과정과 어진제작 추사기법을 담은 가로23센티미터 세로28센티미터 단종어진추사의궤와 왕의 초상화인 어진 뒤에 드리우는 가로346센티미터 세로234센티미터 규모로 오봉병(日月五峯屛) 제작, 가로688센티미터 세로60센티미터로 단종어진봉안식 반차도를 제작했다.

단종대왕이 승하한지 564년이 흐른 뒤 비로서 용안을 갖춰 영월에 봉안되는 의례는 영월과 맺은 세 번의 인연이 완성되는 의미이다. 1457년 유월부터 가을까지 유배가 첫 번째 인연이라면, 승하한지 200여년이 지난 숙종 24년 단종(端宗)이라는 묘호로 추존돼 장릉 그 푸른 무덤으로 영월에 내생(來生)의 거처를 마련한 것이 두 번째이며, 어진으로 봉안되어 어엿한 임금의 풍모로 되살아난 것이 그 세 번째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최명서 영월군수는 ‘어진봉안식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단종의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고 장릉경내에 위치하고 있는 단종역사관에 영구봉안 함으로써 향후, 후대에 남길 문화적 사료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기대한다’ 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