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기고) 그날을 기억하고 광복의 기쁨을 누리자
(광복절 기고) 그날을 기억하고 광복의 기쁨을 누리자
  • 엔사이드편집국
  • 승인 20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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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동부보훈지청 보훈과 배현희
강원동부보훈지청 보훈과 배현희

 

우리나라는 과거 일제로부터 나라를 강탈당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경술국치의 해였던 1910년, 친일파로 유명한 대한민국 총리대신 이완용과 한국통감인 데라우치 마시타케가 앞장서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하였고, 이후 35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1945년 8월 15일에서야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다. 35년, 대한민국을 잃어버렸던 그 해에 태어난 아이가 광복이 되었을 때에는 서른 중반이 되어있을 만큼 긴 시간이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행정, 입법, 사법 그리고 군대에 대한 권한까지 가져갔고, 그러한 권력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재산부터 이름, 생명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강탈하였었다. 하지만 무자비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독립 운동가들은 만세운동을 펼치고, 정부를 세우고, 군대를 창설하는 등 끊임없이 독립에 대한 문을 두드렸다.

이러한 독립운동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희생과 헌신으로 행해졌던 어떤 지역의 만세운동에 대한 역사를, 광복 78주년을 맞이하여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1919년 4월 3일부터, 4월 9일 까지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에서는 수천 명이 참여한 독립만세운동이 열렸었다. 시위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태극기가 압수당하고, 22명이 체포되는 등의 희생이 있었으나, 양양 장터에서부터 전개된 독립운동은 각 면으로까지 확산되어 며칠을 이어졌었다.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일제의 사격에 총상을 입거나 순국하였으며, 이를 기리기 위하여 양양군에는 양양3⋅1만세운동 유적비가 설립되어 현재는 현충시설로 지정되어있다.

이러한 양양3⋅1운동뿐만 아니라 역사책에 실리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어, 전 세계에 우리의 광복에 대한 의지를 전할 수 있었다. 광복은 시기적으로 맞았던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우리 민족이 스스로 우리의 주권을 되찾고 독립을 하려는 목소리를 직접 내고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라고 본다. 만약 그렇게 외치는 자들이 없었다면 일제의 탄압에 대한 내용도, 독립에 대한 의지도, 그 무엇도 전해지지 않아서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하기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우리 후손들은 독립을 기뻐하는 마음을 갖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자유를 위하여 피를 흘리고 저항하신 독립운동가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할 것이다.